Hyunsun You
당신이 생각하는 성공한 디자이너는 무엇인가.
스스로가 선택해야 하는 영역인 것 같다. 누군가에겐 성공의 정의가 적당히 일해서 워라밸을 유지하는 것일 수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성공은 그 분야에서 이름을 알리는 것이다. 나는 일하는 걸 굉장히 좋아한다.
이름을 알리고 싶나.
이름을 알리고 싶다기보다 인정받고 싶다. 안락한 삶보다는 관심받는 삶을 원한다. 재미있는 일을 많이 하고 싶다.
현재 근무하고 있는 워크룸 프레스의 일 외에 대외적인 활동을 많이 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서울시립대에서 강의도 했는데.
다른 전공의 경우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픽 디자인과는 종종 현업에 있는 사람들을 초청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작년은 이화여대와 서울시립대에서 강의를 했고, 재작년에는 성신여대에 다녀왔다. 학생들이 강의를 기획하는 경우도 있고, 선생님이 부르는 경우도 있다. 선생님들은 전공 수업과 관련한 이야기를 요청하는 경우가 많고, 학생들은 졸업 전시 연계 강의로 초청해준다.
왜 당신을 찾는걸까.
나 말고도 초청받는 사람은 많다.(웃음) 개 중 워크룸 프레스의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나처럼 스튜디오에 속해서 일하는 디자이너의 이야기가 궁금한 거겠지.
워크룸 프레스는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디자인 스튜디오이다. 하지만 특이하게 출판도 한다.
출판을 기획하는 경우도 있지 않나.
워크룸 프레스에서 출판하는 모든 책은 워크룸 프레스가 기획한다. 일반 출판사와 비교하자면 미술 관련 책을 많이 출판한다. 조금 특이하고 태도가 분명한 책, 대중성은 크게 고려하지 않는 책을 내고 있다.
출판 기준은? 출판을 기획하게 되는 과정이 궁금하다.
보통의 출판사들은 윗선에서 기획한 책을 편집자들이 작업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워크룸 프레스는 편집자가 출판하고 싶은 책을 기획하게 해준다. 예를 들어 프랑스 불문학에 관심이 많은 김뉘연 편집자는 문학을 기획하고, 미학과 출신의 다른 편집자는 미술 이론에 대한 서적을 기획하고 있다.
디자이너인 당신은 어떤 역할을 하나.
편집자들이 기획한 책을 디자인하고, 외부에서 의뢰한 디자인 작업을 한다. 워크룸 프레스의 창립자들은 고고미술사학과 출신이라, 미술관과 관련된 일이 많다. 그 밖에 브랜드 로고 작업도 한다. 작은 규모의 브랜드는 창립자가 담당자이자 결정권자라서, 나와 브랜드의 대표가 직접 소통하며 일한다. 그 점이 일하기도 쉽고 좋아서, 브랜드와의 작업을 좋아하는 편이다.
이런 이야기를 초청받은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도 해주나.
학생들에게는 진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준다. 디자인과 학생들의 졸업 후 진로는 크게 세가지가 있다. 인하우스로 취업하거나, 독립하거나, 유학하는 경우.
인하우스 디자이너는 어떤 성향의 학생에게 추천하나.
워라밸이 중요한 사람. 인하우스는 규정이 명확하고 정시 출근과 정시 퇴근이 대부분이다. 복지 혜택도 좋고 체계적이라 지원받을 수 있는 게 많다. 하지만 디자이너로서의 역량을 펼쳐내기에는 한계가 많다는 단점이 있다. 외주 디자이너를 섭외해서 어레인지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디자인 보다는 기획에 가까운 일을 하기 때문이다. 단일 브랜드 작업만 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적당한 강도로 일하면서 안정적인 봉급을 받을 수 있다. 워라밸을 중시한다면 아주 좋은 옵션이다.
그럼 당신같은 디자인 스튜디오 디자이너는 어떤 학생에게 어울리나.
그래픽 디자이너로 배워보고싶고, 승부를 보고싶은 사람들일텐데, 대신 워라밸은 망가질 수 있다.(웃음) 하지만 내가 졸업할 때와 비교하면 현재의 스튜디오들은 직원을 많이 두고 있다. 원래는 창립자들만 일하는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보다 체계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하지만 일을 더 많이 해야 되는 건 사실이다.
왜 디자이너들은 일을 많이 할까.
을이니까?(웃음)
유학을 가야하는 학생은?
유학은 정말 신중해야 한다. 유학을 가서 이루고 싶은 게 분명해야 한다. 예를 들면 돌아와서 교수가 되겠다든지, 외국에서 취업을 하겠다든지. 별 목표없이 갔다가 길을 잃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독립을 생각해본 적은 있나.
바로 하고 싶지는 않다. 독립을 하기까지 생각보다 길어질 것 같기도 하다. 워크룸 프레스에서 다 같이 카우프만(Kaufman)이라는 걸 만들기도 했고, 사람들과 잘 맞는다. 잘 맞는 사람들과 일하는 게 소중하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데, 카우프만은 어떻게 만들게 된건가.
작년 10월쯤, 계속 외주 작업을 하고 책을 만들다보니 이 둘을 제외한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졌다. 워크룸 프레스의 특성상 문장에 강한 점을 활용해서 프로젝트를 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책과 영화, 노래에서 따온 문장을 기반으로 물건을 만들고 있다. 워크룸 디자인 팀과 함께 하고 있고, 디자인 팀이 바쁠 때는 나와 실장님 위주로 운영하고 있다.
카우프만의 게시글을 봐도 그렇고, 당신의 개인적인 글들을 봐도 상당히 편집증적인 성향이 눈에 띈다. 그런 성향이 디자인을 할 때도 작용하나.
그래픽 디자이너에게 편집자적 태도나 시각은 아주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책을 디자인 하는 사람들. 그게 아니더라도 일하는 방식에 그런 태도가 있으면 유리하다. 예를 들어 전시 리플릿을 만들 때에는 주어진 텍스트를 그대로 쓸 수도 있겠지만, 편집자의 시선에서 볼 수 있는 디자이너는 정보 파악이 보다 용이하도록 텍스트를 바꿀 수 있다. 즉, 텍스트를 디자인할 수 있다.
Kaufman. Link︎︎︎
출판까지 하는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일하는 것이 작업에 도움이 되나?
책을 만들 수 있는 곳이다보니 여타 스튜디오와는 다른, 독보적인 강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미술관의 경우, 편집까지 우리 스튜디오에 맡길 때도 있다.
평소 자신의 작업 스타일을 알려달라.
사실 작업에 돌입하기 전, 미팅하는 자리에서 어느 정도 디자인을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야 작업이 잘 된다. 클라이언트와 처음 만나 얘기를 나눌 때 그림이 어느 정도 그려져야 내가 잘 할 수 있는 프로젝트라는 확신이 생긴다. 잘 그려지지 않으면 내가 못하는 프로젝트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또, 어려운 디자인을 싫어한다. 예를 들면 ‘사과’라는 전시가 있으면 ‘사과’, 그 자체를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하는 편이다. 복잡한 장치는 넣지 않는다.
헤비 매거진의 브랜드 디자인을 했다. 작업을 제안받았을 때는 어떤 게 떠올랐는가.헤비(Heavy)라는 이름 자체가 주는 인상이 쉽지 않은가. 당연하게도 무겁고 볼드한 무드가 떠올랐다. 또, 헤비 매거진이 여태 여성 작업자들과 다양한 형태의 활동을 하지 않았나. 여성 작업자들을 소개하고 널리 퍼뜨리겠다는 헤비 매거진의 메시지를 담고자 폰트를 유기적인 형태로 변형했다. 약어로 쓸 때, 일반적으로는 H와 V를 쓸 것 같지만, V와 Y를 결합하기도 하고. 글자 간의 공간을 붙여서 알파벳들이 연결되어 보이도록 만들었다. 나는 시각적으로 사고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알파벳들이 재미있게 읽히도록 구성하는 데에 초점을 맞췄다.
Heavy Magazine Logo. Design by Hyunsun You
여성 작업자인 당사자로서, 최근 여성 작업자들의 활동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일단 그래픽 디자인 분야에서 현재 눈에 띄는 작업자들은 대부분 여성이라 자연스럽게 여성 작업자들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느낀다. 눈에 띄는 작업자는 여럿 있는데, 김현진 디자이너(@pot_works)가 특히 눈에 띈다. 한글을 개성있게 그리는 작업자다. 기존에 없던 스타일이어서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여성 작업자들의 미래는 어떠할까. 연대는 유의미할까?
내가 제일 선호하는 방식은 자연스럽게 연대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잘하는 작업자들 중 여성의 비중이 자연히 많아지고, 당연하다는 듯이 그들이 두드러지는 방식이 좋다. 옛날에는 그래픽 디자인 분야에서도 남성간의 연대가 있었지만, 잘하는 여성 작업자가 많아지다보니 남성이란 이유로 지지하는 경향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굳어진 틀을 바꾸려면 의식적인 연대도 어느 정도 필요하지만, 연대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부작용도 적을 것 같다. 또, 미래에는 보다 충격적인 작업을 하는 여성 작업자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내가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작업 양상을 더 넓히면 기존과는 또 다른 세계를 펼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창작자로서 당신의 계획은 뭘까.너무 바쁠 때는 회의감이 들기도 하지만, 일 벌리는 걸 되게 좋아한다.(웃음) 학생 시절, 파일드(Filed)라는 크루를 만들었고, 지금은 카우프만을 운영하고 있다. 계속 이런 활동을 하고 싶다. 디자인도 여전히 너무 좋아한다. 언젠가는 항공사 디자인을 해보고 싶다. 비행기에 로고가 크게 프린트 되어있는 모습을 보고 싶다.(웃음) 하지만 지금은 내게 주어진 브랜드가 커가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하고 싶다. 카우프만 또한 초심을 잃지 않고 계속 해나갈 생각이다.
유현선 인스타그램 Hyunsun You instagram
에디터/ 허지인 Jean Heo
사진/ 금시원 Xione Qin